신앙 관련

허락하신 것을 이루기까지

레갑 2023. 1. 19. 14:08

1995년 12월과 2022년 7월

대학 졸업 예정자로 처음 회사에 입사한 것이 1995년 12월 1일이었다.

사회 생활이라고는 1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안정적인 수입과 미래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2022년 7월, 생각하지도 못했던 퇴직이라는 첫 경험을 하게 되었다. 26년 8개월만이었다.

사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첫 승진을 앞두고 IMF가 터져 승진을 못할까봐 불안했던 기억과 그룹 옷로비 사건으로 1년내내 조사라는 조사를 받았던 기억들. 나는 사표를 제출한 적이 없는데도 한차례의 퇴직금 수령과 회사 사업자등록번호가 4차례나 바뀌는 일을 경험했던 것이다. 또한, 쓸개도 빼고 심장에 스탠드도 삽입하고, 간내담도의 막힌 곳도 뚫는 등 여러 번의 병원 도움을 받았다.

물론, 좋은 일도 있었다.

급여는 첫월급 기준으로 3배가 증가했고, 직장을 통해 많은 좋은 사람을 만났으며, 그중 회사 사람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약 27년의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끊임없는 변화와 적응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야곱의 험악한 세월

주변의 기독교인들을 보면 하나님을 믿으면 편안하고 안락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을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해서 편안하고 안락한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야곱과 같은 사람은 형 에서를 제치고 장자권을 획득하였으나 그의 인생은 따지고 보면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형 에서를 피하기 위하여 살던 곳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도망쳐야 했으며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이나 종살이를 해야 했다. 세겜에서는 딸 디나가 욕을 당하는가 하며 아들들의 난동 때문에 다시 그곳을 떠나야 했고, 에브랏으로 옮겨가던 도중에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었고 그녀가 낳은 아들 요셉을 편애하다가 그 요셉마저 실종되어 다시 슬픔 속에 빠져야 했다. 그리고 또 말년에는 기근 때문에 노구를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세기 47장 9절)

 물론 야곱에게 끊임없이 고난이 닥치기는 했으나 그가 결코 궁핍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딸인 레아와 라헬 자매를 아내로 두었고 그녀들의 여종 실바와 빌하에게서도 아들을 낳아 네 명의 아내와 열두 명의 아들을 두었으며 그가 애굽에 이주할 때에는 그 일족이 70여 명에 이르고 있었다. 그의 재산도 엄청난 것이어서 양 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심히 많았으며(창 30:43) 그 재산이 너무나 많은 것에 팔려서 세겜 성의 족장과 백성들이 야곱의 집안과 교류하기 위해 모두 할례를 받았을 정도였다(창 34:23).

 

나의 공력과 여호와의 주심

야곱은 큰 재산을 모으기에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공짜로 혹사하는 데 명수인 외삼촌 라반에게 걸려들어서 꼬박 20년간을 죽어라고 일해야 했던 것이다.

일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서슴지 않았을 라반은 저절로 굴러들어온 야곱에게 대뜸 자기 집에서 일할 것을 제의하며 얼마의 보수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아마도 라반이 가지고 있던 복안은 아주 인색한 보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의 요구는 엉뚱하게도 그의 작은딸 라헬이었다. 당시의 딸은 재산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야곱은 그 대가로 7년 봉사를 약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라반의 계산은 빠르게 돌아갔다. 용모와 지능이 아우보다 약간 미흡하여 제값 받기가 어려운 큰딸 레아를 얹어서 7년을 14년으로 늘려잡은 것이다. 엄청난 장삿속이고 '불공정 거래'였다. 형을 속여 넘긴 야곱이 자기보다 더 수가 높은 장사꾼에게 당하는 순간이었다. 라헬을 얻기 전의 7년이야 그런대로 참을만 했을지 모르나 얻은 후의 7년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라반은 약속한 14년이 끝난 후 또 새로운 제의를 한다. 새로 보수를 정하고 계속 일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4년의 고생 속에서 단련된 야곱도 이제는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야곱이 반격할 차례였던 것이다.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나이다 나의 공력을 따라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창세기 30장 30절)

여기에 바로 야곱의 믿음이 나타난다. 자신이 비록 열심히 일했어도 잘되게 하신 분은 여호와라는 믿음이었다. 그는 자기 형 에서를 피하여 브엘세바를 떠나 광야에서 노숙할 때 만났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28장 15절)

흔히 어떤 사람은 성공이 자기의 노력 탓인 줄로만 생각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기는 도무지 애쓰지 않고 하나님께만 의뢰하기만 한다. 그러나 야곱은 '나의 공력'과 '여호와의 주심'을 동시에 말했다. 그러나 라반은 말로만 그것을 수긍하면서 야곱의 수고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상도 해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능한 일꾼 하나를 놓치게 된 것이다. 야곱은 라반에게 기이한 제안을 내놓는다.

그는 양 떼 중에서 검은 것, 얼룩무늬의 것, 점 있는 것들을 다 가려내어 외삼촌 라반이 가져가고 자기에게는 흰 양들만 맡겨 달라고 말했다. 그런 후에 그의 양 떼들 가운데서 혹시 검은 것이나 얼룩무늬의 것이나 점 있는 것이 생기면 그것들을 자기의 몫으로 달라고 야곱은 제안했던 것이다. 라반이 보기에 그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제안이었다. 그는 얼른 야곱의 제안을 수락하고 양 떼 중에서 흰 것만 남겨놓고는 다른 것들을 모두 야곱의 양 떼와 사흘 길이 떨어지도록 격리시켜버렸다.

그러나, 야곱의 이상한 짓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그는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잘라 그 껍질을 벗겨서 얼룩무늬를 만들고 그것을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서 양 떼가 그 앞에서 물을 먹게 하였다. 그 결과 흰 양들은 많은 수의 검고 점 있고 얼룩무늬가 있는 새끼들을 낳게 되었다. 야곱의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하여 그가 6년을 더 일했을 때에는 마침내 거부가 되어 있었다(창 31:1).

도대체 이게 무슨 요술 같은 이야기인가? 물 속에 얼룩무늬의 막대기를 꽂아놓는다고 해서 흰 양들이 얼룩무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것일까? 아무리 옛날 이야기라 하더라도 좀 심했다 싶었다.

양의 털 빛깔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유전자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흰 양이 어떻게 검은 양이나 얼룩무늬의 새끼를 낳을 수 있는 것일까? 물론 흰 양과 검은 양이 교배를 한다면 잡종이 태어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검거나 얼룩무늬의 양들은 이미 모두 가려내어서 라반이 가져가 버렸던 것이다.

 

멘델의 법칙

잡종 교배의 실험을 거듭한 끝에 유명한 완두콩 실험으로 유전의 법칙을 도출해낸 멘델이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였다. 멘델은 창세기 30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런 교배의 실험을 계속했던 것은 아닐까?

멘델이 완두콩에서 선택한 대립형질 중의 하나는 씨의 모양이 둥근 것과 주름진 것이었다. 이 두 가지의 씨를 교배시킨 결과 1세대에서는 둥근 것만 나타났다. 완두콩에서는 둥근 것이 우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1세대끼리 교배를 시키자 둥근 것 3개, 주름진 것 1개가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2가지의 대립형질로 유전 실험을 했을 때에는 또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즉 그는 둥글고 노란 씨와 주름지고 초록색인 씨를 교배시켜 보았는데 1세대에는 둥글고 노란 씨가 나타났다. 둥글고 노란 것이 우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2세대에서 나타난 것은 16개 중에 둥글고 노란 것이 9개, 둥글고 초록색인 것이 3개, 주름지고 노란 것이 3개, 주름지고 초록색인 것이 1개로 나타났다. 즉 16개 중 7개의 잡종이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이 잡종의 비율은 다음 세대로 갈수록 더 커지게 될 것이다.

 

내 집을 세우기까지

양의 경우에는 대체로 흰 털이 우성이다. 그러므로 라반이 검은 것, 얼룩진 것, 점 있는 것을 가려내어 다 가져갔을 때 야곱에게는 흰 양만 남았으나 그들 중의 대부분은 털이 희더라도 검은 털의 열성인자를 지닌 1세대들이었고 그들에게서 다시 검은 것, 얼룩진 것, 점 있는 것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대체 야곱은 어떻게 하여 1865년에 발표된 멘델의 유전 법칙을 그보다 거의 4,000년 전에 알게 되었던 것일까? 그것은 바로 야곱의 경험에서 얻어진 계산이었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야곱은 라반의 양 떼를 치면서도 보수에 대한 불만 때문에 아무렇게나 일한 것은 아니었다. 보수에 대한 불만과는 별도로 그는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일의 성과를 철저하게 반성하고 분석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1세대의 흰 양들이 잡종의 양을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야곱은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서 물구유에 꽂아놓는 것 같은 짓을 했던 것일까?

야곱은 이미 14년간의 양치기 경험으로 1세대의 흰 양에게서 잡종들이 태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야곱에게는 한 가지 켕기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레아와 라헬의 수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한에 대한 외경이었다. 야곱은 어리숙한 레아보다는 아름다운 라헬을 더 사랑하였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랑받는 자보다 사랑 못 받은 자에게, 행복한 자보다 소외된 자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좀더 레아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자유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야곱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는 못하셨다. 오직 하나님께서 레아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권한에 속해 있는 수태의 복이었다. 그래서 레아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는 동안 라헬의 태는 열어주시지를 않은 것이었다.

이것을 야곱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얼룩무늬의 나뭇가지를 물구유에 꽂아놓고 만물의 생명을 쥐고 계신 하나님께 구체적인 기도를 드린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나중에 레아와 라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짐승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창세기 31장 9절).

자기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의 권한에 속하는 일을 분명히 알았던 야곱, 자신의 노력과 끈질긴 기도를 잊지 않았던 야곱은 마침내 자신의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허락하신 것을 이루기까지

2023년 새해를 맞으면서 창세기 28장 15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되내어 본다.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나의 인생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것을 다 이루시기를. 그때까지 내게 주어진 것들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철저히 반성하고 분석하며 날마다 새로워지길.

 

* 인용 : 성경과의 만남_김성일 저